"살을 빼려고 굶었는데, 결국 더 먹게 됩니다" | 다이어트 실패가 반복되는 진짜 이유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몸무게
"원장님, 저 사실 안 먹어요.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샐러드만 먹어요.
그런데 밤만 되면 폭발해요.
라면에 과자에, 아이스크림까지.
다 먹고 나면 너무 자괴감이 들어서 다음 날 또 굶어요."
이것은 40대 직장인 은정님(가명)이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했던 말입니다.
은정님은 키 162cm에 체중 78kg.
내과에서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경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이어트를 결심했습니다.
유행하는 식단을 따라 해봤고, 간헐적 단식도 시도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매번 3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야식 폭식이 찾아왔고,
그 뒤엔 죄책감, 자기혐오, 그리고 다시 극단적인 절식.
이 사이클이 2년째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의지가 약한 건지, 체질이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은정님의 이 한마디에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은정님의 문제를 단순한 식욕 조절 실패로 보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은 입이 아니라 마음이 결정한다
한의학, 특히 사상의학에서는
대부분의 질병이 타고난 성정(性情)의 치우침에 후천적인 정신적 갈등이 더해지면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마다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마음의 방향이 다르고,그 방향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몸이 망가진다는 뜻입니다.
이제마 선생은 『동의수세보원』에서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성정이 균형을 잃고 크게 동하면, 칼로 장(臟)을 베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 번 크게 흔들리면 10년이 걸려도 회복이 어렵다고.
흥미로운 것은, 이 130년 전의 기술이 최신 서양 연구와 놀라울 만큼 겹친다는 점입니다.
2025년 메타분석에 따르면 비만인의 약 45%가
감정적 섭식 — 스트레스나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에 대한 반응으로 먹는 행동 — 을 보입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시키고,
이 호르몬은 단짠 고열량 음식에 대한 갈망을 끌어올립니다.
마치 고속도로가 정체되면 모든 차량이 꼼짝 못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로 막힌 감정의 흐름이 식욕이라는 우회로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 반복되는 폭식은 뇌의 보상회로를 둔감하게 만들어서,
같은 만족을 느끼려면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약물 중독과 동일한 기전입니다.
그렇다면 왜 '체질에 맞는 음식'만으로는 부족한 걸까요
많은 분이 '체질다이어트'라고 하면 태음인은 이걸 먹고, 소음인은 저걸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상의학의 본뜻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은정님에게 필요한 것은 태음인에게 좋다는 율무나 콩을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정님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밤마다 폭식을 부르는 그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상의학에서 태음인의 성정이 극에 달하면 '사치와 쾌락에 끝이 없어진다'고 기술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보상 역치의 상승 — 먹어도 먹어도 만족이 안 되는 상태 — 과 겹칩니다.
반면 소음인은 성정이 흔들리면 '기호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저것 먹어보지만 뭘 먹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 식습관 자체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패턴입니다.
같은 비만이라도 마음이 무너지는 방향이 다릅니다.
그러니 같은 식단을 줘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맞춤복을 짓듯이, 그 사람의 성정이 어디로 치우쳤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마음의 균형점을 잡아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평소 야식 충동이 올 때 5분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감정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여보십시오.
"지금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허한 건지" 이 한 가지 질문만으로도 폭식의 절반은 멈출 수 있습니다.
만약 2주 이상 폭식과 절식이 반복되거나, 먹고 난 뒤 심한 죄책감과 우울이 동반된다면,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전문적 도움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몸무게를 바꾸는 열쇠는 저울 위에 있지 않습니다
은정님은 석 달간의 치료 과정에서 식단표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감정 패턴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체중은 부산물처럼 따라왔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밤마다 찾아오는 식욕은 배고픔의 신호가 아니라,
하루 종일 눌러놨던 감정이 출구를 찾는 소리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몸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회복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마음의 균형이 먼저 잡혀야 합니다.
저의 역할은 그 균형점을 함께 찾아가는 조력자입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몸 전체를 세심히 살펴주는 의료진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살을 빼는 일은,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 동제당한의원 원장 최장혁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