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를 세 군데나 다녔는데 또 올라와요" | 재발을 반복하는 편평사마귀
없앨 때마다 돌아오는 작은 돌기들
"이마에 좁쌀 같은 게 몇 개 올라왔길래 대수롭지 않게 넘겼거든요.
그런데 한두 달 지나니까 볼까지 번지더라고요.
피부과를 세 군데나 다녔는데, 없앨 때마다 또 올라와요."
이것은 20대 후반 학원 강사 수빈님(가명)이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했던 말입니다.
수빈님은 오후부터 밤까지 수업을 하고, 식사는 늘 불규칙했으며,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1년 반 전 이마에 처음 나타난 작은 돌기 두세 개가, 냉동치료 네 번과 레이저 두 번을 거치는 동안 오히려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냉동치료 받으면 잠깐 괜찮아요.
근데 한두 달 지나면 다른 데서 또 생기니까, 이제는 치료해도 소용없는 거 아닌가 싶어요."
수빈님의 눈에는 무력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울퉁불퉁한 피부 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조차 꺼려진다고 했습니다.
피부과에서는 바이러스성이니 면역력을 올리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했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빈님의 상태를 사마귀 자체만의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환자분이 겪는 반복적인 좌절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사마귀는 없앨 때마다 돌아오는 걸까요?
잡초를 뽑아도 밭이 바뀌지 않으면
편평사마귀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피부 표면에 자리 잡아 생기는 작고 납작한 돌기입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냉동이나 레이저로 눈에 보이는 병변을 제거하지만, 바이러스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치료법은 아직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마귀를 걷어내도, 피부 아래에 남은 바이러스가 면역이 약해지는 틈을 타 다시 올라오는 셈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 상태를 정기허약(正氣虛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정기란 쉽게 말해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키는 힘, 곧 방어력입니다.
이 방어력이 넉넉하면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정기가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피부 위로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기에 풍열(風熱)이라는 열기가 피부 표면에 머물고, 습(濕)이라는 노폐물이 정체되면, 사마귀가 뿌리내리기 딱 좋은 환경이 갖춰집니다.
밭에 난 잡초를 떠올려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잡초만 뽑아내면 밭은 깨끗해 보입니다.
하지만 흙이 질척하고 영양이 치우쳐 있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자리에서, 혹은 바로 옆자리에서 잡초가 다시 고개를 내밉니다.
토양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잡초는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이라 생각해 보셔도 좋습니다.
파수꾼이 건강하고 깨어 있으면 침입자는 성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지치고 졸기 시작하면, 침입자는 느긋하게 성문을 드나들게 됩니다.
수빈님의 몸에서는 바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면역이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고, 재발한 사마귀가 스트레스를 불러오고, 그 스트레스가 다시 면역을 끌어내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악화시키는 이 고리를 끊는 것이 치료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손입니다.
편평사마귀는 만지거나 긁으면 바이러스가 손끝을 타고 다른 부위로 퍼집니다.
이를 자가접종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내 손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택배 기사가 되는 셈입니다.
수빈님도 무의식적으로 이마를 만지는 버릇이 있었고, 이것이 사마귀가 볼까지 번진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수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 세포는 깊은 잠을 자는 동안 가장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새벽 1시 넘어 잠드는 습관이 이어지면, 파수꾼이 늘 졸고 있는 꼴이 됩니다.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만으로도 몸의 방어력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먹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끼니를 거르거나 간편식으로 때우는 날이 잦으면, 면역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단백질과 비타민이 모자라게 됩니다.
하루 세 끼가 어렵더라도 단백질이 든 식사를 두 끼 이상 챙기고,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곁들이는 것이 토양을 바꾸는 첫걸음입니다.
한 가지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만약 사마귀가 갑자기 커지거나 통증이 생긴다면, 혹은 점막 부위에 나타났다면, 반드시 의료기관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으셔야 합니다.
피부 위의 흔적이 사라지는 날을 향해
저는 수빈님에게 사마귀를 없애는 것만이 치료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순히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사마귀가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몸의 환경을 바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빈님의 체질과 상태에 맞춘 한약 처방으로 정기를 북돋우고, 풍열과 습을 걷어내면서, 동시에 생활 속 원인을 하나씩 고쳐 나갔습니다.
석 달 뒤, 수빈님의 이마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돌기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반복되는 사마귀는 단순한 피부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몸은 스스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는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역할은 그 회복의 열쇠를 함께 찾아가는 조력자입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사마귀 너머 몸 전체를 세심히 살펴주는 의료진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 동제당한의원 원장 최장혁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