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세 번 실패하고 나니, 제 몸이 고장 난 것 같아요" | 보조생식술 반복 실패 후 체질 회복과 재도전
세 번의 기다림 끝에 무너진 것
"시험관 세 번째 실패하고 나니까, 제 몸이 고장 난 거 아닌가 싶어요.
과배란 주사 맞으면 배가 빵빵해지고 온몸이 붓는데, 결과가 좋으면 참을 수 있거든요.
근데 또 안 됐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주저앉고 싶어요."
이것은 36세 직장인 수진님(가명)이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했던 말입니다.
수진님은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결혼 3년 차 여성이었습니다.
결혼 2년 차에 자연임신이 되지 않아 산부인과 검사를 시작했고, AMH 수치가 또래보다 낮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체외수정 시술에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매번 담당 선생님은 "배아 등급은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착상은 되지 않았습니다.
시술이 반복될수록 수진님의 몸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으로 복부 팽만과 부종이 심해졌고, 채란 후에는 며칠씩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잠은 새벽 두 시가 넘어야 겨우 들었고, 식사는 간편식으로 때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수진님을 힘들게 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남편한테 미안해요.
저 때문에 아이를 못 갖는 것 같아서."
저는 수진님의 몸만 보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시술을 견디는 동안 몸 전체가 얼마나 소진되었는지, 그 피로가 어디까지 쌓여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검사 결과에도 특별한 이상이 없고, 배아 등급도 괜찮은데, 왜 착상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걸까요?
씨앗이 아니라 토양의 문제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신허(腎虛)라는 개념으로 바라봅니다.
신허란 단순히 신장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몸의 생식 에너지의 뿌리가 약해진 상태 , 즉 임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근본 에너지가 바닥나 있다는 뜻입니다.
마른 화분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흙이 메마르고 수분이 없다면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배아의 등급이 좋다는 것은 씨앗이 건강하다는 뜻이지만,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릴 토양, 즉 자궁의 환경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착상은 어렵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자궁내막 수용성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막의 두께만이 아니라, 내막이 배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착상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의학은 한 가지를 더 봅니다.
반복되는 과배란 자극과 채란, 이식의 과정은 몸에 적잖은 부담이 됩니다.
충전 없이 계속 달리는 배터리와 같습니다.
한 번의 시술 주기만 해도 몸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시술의 물리적 부담, 결과를 기다리는 심리적 긴장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기혈(氣血)이 소진됩니다.
기혈이란 몸을 움직이고 회복시키는 에너지와 영양의 흐름입니다.
특히 한의학에서는 자궁으로 향하는 에너지 통로인 충임맥(衝任脈)의 흐름이 원활해야 임신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혈이 바닥난 상태에서는 이 통로마저 힘을 잃게 됩니다.
기혈이 소진된 몸에서 다시 시술을 시도하면, 이미 지친 토양에 또다시 씨앗을 심는 셈입니다.
시술 반복이 기혈을 소진시키고, 소진된 기혈이 착상 환경을 악화시키는 고리.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시술 횟수만 늘어날 뿐입니다.
다음 시술 전에 몸이 먼저 쉬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시술과 시술 사이의 회복기를 몸에게 허락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술을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서지만, 지친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로 다시 시작하면 같은 결과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면이 무너져 있다면 먼저 잠자리를 돌봐야 합니다.
밤 열한 시 전에 누워서 몸이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호르몬 리듬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습니다.
식사는 간편식을 줄이고, 따뜻한 음식 위주로 소화기에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비위(脾胃)가 편안해야 기혈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도 오랜 시간 한의학에서 강조해 온 방법입니다.
자궁은 차가운 환경에 민감합니다.
하복부의 순환이 잘 돌아야 내막의 상태도 좋아집니다.
찜질팩이나 반신욕처럼 단순한 방법이지만, 꾸준히 하면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시술 일정이나 약물 조절은 반드시 담당 난임 전문의와 상의하셔야 합니다.
한의학적 체질 보강은 시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술이 잘 되도록 몸의 토양을 가꾸는 과정입니다.
다시 달리기 위해 멈추는 용기
넉 달 뒤, 수진님은 네 번째 시술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엔 몸이 다르다는 게 느껴져요.
잠도 잘 자고, 배도 안 차고, 마음도 좀 편해졌어요."
저는 수진님에게 시술을 그만두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자고 했을 뿐입니다.
단순히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몸의 환경을 바꾸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수진님의 몸은 그 시간 동안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지금 지쳐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몸이 쉬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당신의 몸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역할은 그 회복의 열쇠를 함께 찾아주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의 몸 전체를 세심히 살펴주는 의료진을 만나십시오.
멈추는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다시 달리기 위한 준비입니다.
✍️ 동제당한의원 원장 최장혁 감수